네가 낫고자 한다면
(요한복음 5:1-18)
예수님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행각에 누운 채 절망의 모습을 하고 있는 병자가 예수님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한은 그가 38년이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병이 이미 오래된 줄을 아셨습니다. 이 병자는 낫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으나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뛰어들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이곳에 이렇게 누워만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스스로 뛰어들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와줄 친구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구가 없는 자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사람에게 조력자가 되어 주시기 위해,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그에게 가까이 가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Do want to be made well?)고 물으셨습니다. 이 시간 이 질문에서 세 가지 의미를 찾아 은혜를 나눌 것입니다.
1. 시선을 바꾸라
자신을 둘러싼 제한적인 조건에 늘 두는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선의 방향은 그 사람의 인생관인 동시에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거짓 ‘베데스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참 ‘베데스다’이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2. 도전하라
인간에게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은 상황에 도전 하는 것입니다. 38년된 병자의 모습이 요행을 기다리는 모습이고, 아주 불쌍한 모습일 수 있지만, 그의 모습이 도전의 모습이고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베데스다에 와 있는 것만도 도전인 것입니다. 38년된 병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에게 도전은 단지 베데스다를 찾는 것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기도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이 해야 할 도전은 기도일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33“3)’.
3. 자존감을 가지라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넣어줄 사람이 없다. 먼저 다른 사람이 간다.”(요5:7) 등의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천하 보다 더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야 합니다.
- 나가는 말
우리가 병이 들었거나 우리의 삶이 조금 나은 방향으로 바꿔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 말씀처럼 시선을 바꾸고, 도전하고,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도 오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시는 우리 군포 새 중앙교회 가족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한줄간격주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